이적이 책 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계속 까 먹고 있었다가

리봉이가 이 책 보고 있는 인증짤보고 갑자기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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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문사냥꾼 사진을 보면 폴로 짝퉁 비슷한 사진이 있다.

내가 본 책은 도서관에서 빌렸기 때문에 겉을 둘러싼 겉표지가 없는 하드커버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아마 소프트 커버여도 표지 장식은 지문사냥꾼 사진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 보면 폴로 짝퉁 이미지가 당신을 반기고 있을것이다.

처음 만나게 되는 글은 '활자를 먹는 그림책'인데, 짧고도 짧은 이 단편을 읽으면서 직감적이라고

할까? 육감적이라는 말이 더 맞을 듯 하다. 육감적으로 딱 알아차렸다.


이적의 소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가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람세스를 집필한 크리스티앙 자크이고, 나머지 한 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라던지,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나무, 뇌 등 정말 기상천외한 상상으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인데,

이적 글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비슷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강추하고 싶다.

베르의 글보다 한 수 아래가 아냐. 오히려 베르의 글이 번역되었기 때문에

좀 읽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이적의 글은 한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술술 읽힌다.

활자를 먹는 그림책의 백미는 맨 마지막 부분인데, 정말 이적의 센스(!)는 기가 막히다.

생각해보면 베르의 책은 그림도 없이 오로지 검은 글씨로만 되어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으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도 넘길 때 마다 빽빽이 들어선 글씨를 보고 숨막힐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글씨체도 좀 크고, 거의 한 페이지에 한 컷 씩 들어가는 그림 때문에 좀 편안하다.

(사실, 글이 짧기 때문에 페이지 수를 늘리기 위한 출판사의 계략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매우 술술 읽히는 책인 건 확실하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적의 글솜씨가 정말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다 읽고나서 보니,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이적의 홈페이지에 연재되었다고 하더라.

글 쓰는 걸 예전부터 해왔는지 몰라도 예사솜씨가 아니다.

내가 정말 놀랐던 부분은 '불빛이 울먹이다'라는 표현이었는데,

저 표현을 보고 '아,,, 정말 기막히게 썼구나'하고 생각했다.

글 쓰는 버릇이 있어서 가사도 잘 쓰는건지, 아니면 가사를 쓰다보니 실력이 늘어서 필력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저 표현 보자마자 얼른 책 읽던 자세를 바꿔 앉았다.

(갑자기 책을 함부로 대충대충 읽어선 안 되겠다는 느낌이 마구마구 오더라 -_-)

많은 단편들이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제목이자,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 가장 긴 단편

'지문사냥꾼'만 이야기해보자.

중요한 인물은 세 명이다. L, J, C 이렇게 세 사람인데 합쳐놓고 보면 꼭 '이적 씨'의 이니셜같다.

어쨌건 L은 지문사냥꾼이고, J는 밤도둑, C는 L을 예전부터 알아왔던 여교사다.

줄거리는 패스하도록 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만 간추려보자면

첫째, 구성에 대해서.

남주 1과 여주2로 구성되는 관계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굉장히 자주 사용하는 관계도인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L의 예전 기억을 갖고 있는 C와

L의 현재 모습을 보고 있는 J.

사실 C의 직업이 교사인 것도 L과의 옛날추억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L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발길질당하며, 저주받은 아이라고 손가락질받을 때

L을 동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울 수 밖에 없었던 C는

(사실 C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마을에 저주를 내리고 사라져버린 L에게 무의식적으로 속죄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교사를 택하지 않았을까.(교사가 된다면, 확실히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따돌림을 받는 왕따도 자기의 힘(교사)으로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것이다.)

J는 아빠와 같이 밤도둑일을 하다가, 아빠가 사고로 죽고 혼자 고아로 남아 도둑질을 하는 역할인데

도둑이라는 직업도 꽤 의미심장하다.

본문에서도 나오지만, J는 도둑질을 하면 할수록 나날이 실력이 늘어간다.

불이 없는 껌껌한 집이라도 어느 집이 사람이 있는지, 어느 집이 빈 집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는데,

L이 감찰관의 집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궁지에 몰렸을 때도 이러한 능력(?)때문에 L이 결백하다는 걸

J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J와 L은 고아라는 점도 비슷하고, 남의 물건(L은 지문)을 훔친다. 둘 다 사냥꾼이다.



둘째, 아이러니.

사실 L은 지문만 훔쳤을 뿐이고, 그것도 감찰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한 짓이다.

지문을 훔치는 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기 위해 지문만 훔쳤을 뿐이다.

그런데, 그 지문강탈자들을 수용소로 보내서 인간 마루타가 되게 만든 건 총독이다.

총독이 총사령관이 되면서 아이러니의 절정을 보여준다.

(아이러니의 절정은 임경배의 카르세아린(환타지 소설)에서 맛 볼 수 있다.

'평범한 인간-> 기사 or 마법사 -> 드래곤 -> 인간'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같은 구조가 정말 최고

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인데,,,환타지 소설인만큼 재미도 있는데다가 알면 알수록 감탄하게 되는 소설.)

어쨌건 현실세계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냈다고 봐야겠다.

왜냐하면 에필로그에서 L은 죽고,

J는 L을 못 잊어 도둑질로 자위하고,

C는 L의 어머니와 같이 다시 아이를 임신한다.

총독은 아까전에도 말했듯이 총사령관이 되고.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자면 아마 C는 애를 낳을 것이다.

그 아이는 다시 L처럼 손가락질 받으며 자랄테고 L처럼 자라겠지.


그러면서 또 다시 똑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거다. 계속 사이클이 도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는 비리를 저지르고, 그 비리로 인해 서민들만 죽어나고, 반대로 그 공직자들은

떵떵거리면서 살고 세금은 늘어나고, 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고,,이러한 현실세계의 부조리한

사이클이 돌 듯이.

사실, 이적이 이 글을 쓸 때 내가 말한 것처럼 위의 것들을 유념해서 쓴 건지, 아니면 그냥 재미있게

쓰다보니까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 다는 점에선 웰메이드임에는

틀림없다.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되어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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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이적은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적의 글 솜씨 최고.
지문사냥꾼 웰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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